2021. 5. 31.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미술품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다.
제목에서 모나(정확한 이탈리아어로는 몬나-Monna)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이고, 리자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이다. 즉 우리말로 하면 리자 여사.
그림의 특성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가로 53㎝, 세로 77cm짜리 유채(油彩) 패널화이며, 완성 시기는 1503~1506년경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미소가 특징인데, 입을 보면 웃고 있는데 눈만 보면 알 수 없다.
유명한 만큼 도난 사건도 많았고 도난 전설은 더욱더 많다. 1911년 모나리자의 도난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의 사주를 받은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는 그 전년에 도난을 막기 위해 그림 주위에 설치한 유리벽을 시공한 작업부이기도 했다. 프랑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인 화가 피카소가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고.
발피에르노는 모나리자가 도난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린 후 미국의 부호들에게 모사품 6점을 팔아치우기까지 했고, 이게 도난의 목적이었다. 헌데 모사가 완료된 후 진품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실행범인 페루자가 작업비 대신 가져가버린 후 자기 아파트에 묵혀두고 있다가, 2년 뒤에 돈이 곤궁해지자 피렌체의 화상에게 진본을 매각하려다가 경찰에게 검거되었다. 진본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전역을 순회 전시한 후 프랑스로 반환되었다. 페루자는 열렬한 애국자로 이탈리아인이 그린 이탈리아인의 초상화가 프랑스에 있다는 데에 불만을 품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는 6개월의 옥살이 후 풀려났으며 조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훔쳤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건 도난범인 페루자가 정상 참작을 노리고 한 발언이 공식적인 시초이지만, 워낙 이탈리아 내에서는 유명한 전설인지라 누가 최초로 저 말을 했는지는 불명이다. 사실은 훨씬 이전, 다빈치 생전에 다빈치를 후원하던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물려받은 것이다.
프랑수아는 1515년에 이탈리아를 원정했는데,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는 프랑수아가 열렬한 르네상스 문화 애호가라는 점을 이용, 유명한 예술가란 사람들은 싹싹 긁어모아 프랑수아와 회담을 열었다. 그리고 레오의 작전은 완벽히 먹혀들어 프랑수아는 인기 연예인을 만난 열혈 팬처럼 흥분해버렸고, 군사적으로는 교황령을 압도하고 있었으면서도 교황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프랑수아 1세는 레오의 후원을 받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와는 달리 다빈치에게는 후원자가 없다는 점을 알았고, 이에 다빈치에게 여생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저택을 하사할 테니 프랑스로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다빈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듬해에 프랑수아와 함게 프랑스로 향했다. 그리고 왕의 수석 건축가 겸 기술자라는 칭호를 받고 3년을 살다가 1519년에 죽었는데, 죽을 때 자신을 후원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의미로 모나리자를 비롯해 프랑스로 올 때 싸들고 왔던 작품들을 몽땅 프랑수아에게 바쳤다. 즉,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에게 모나리자를 준 것이므로 현대에는 프랑스가 소유하는게 정당하다.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 등 각종 미술관, 박물관들에는 해외에서 약탈, 수집한 문화재들이 워낙 많아서 이런 루머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