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4일, 38세의 여성 무속인 권모씨가 수필가이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인 80세의 서정범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일이 있었다. 권모씨는 서정범 교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증거로 당시 상황을 녹음했다는 테이프(녹음기)와 정액 샘플을 제출했다.
서정범 교수는 한국 무속 문학의 권위자였으며 연구 중 무속인 권모씨에게 자문을 구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권모씨가 서정범 교수에게 연정을 갖고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거절당하자 고소한 것.
경희대학교 당국은 사건 경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으나 총여학생회가 총장에게 질의서를 보내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살포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통에 교내 총여학생회가 주도한 시위가 메이저 신문에까지 보도되자 결국 학교 측은 서정범 교수에게 2007년 1월 30일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직위해제 결정을 전후한 시점부터 이미 총여학생회가 진상이 확실하지 않은 사안에 대하여 섣불리 이슈화를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이 문제로 교내의 학생자치기구 간에 논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증거로 제시된 녹취록이 조작된 것으로 판명되었고(그러니까 짜깁기) 원본은 권모씨의 자택에 보관되어 있었다. 거기다 정액 샘플마저도 조작이었다. 2월 26일자로 서정범 교수는 무혐의 처분되었고 이번엔 권모씨가 무고죄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무고죄로 기소된 무속인 권모씨에 대해서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섣불리 서교수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던 총여학생회는 비판을 받았으며 서교수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렇게 되자 총여학생회는 3월 5일, "경희 구성원께 총여학생회가 진심을 담아 드립니다" 라는 장문의 성명서를 냈다. 그러나 '사과' 대신 '진심을 담겠다'는 애매모호한 표현과 '독이 든 사과' 로 표현하는 말장난을 통해 이들은 빗발치는 사과 요구를 사실상 일축했다.
성폭력 사건은 진상이 규명되기 전부터 처벌해야 한다고 설치더니 이게 무고 사건이 되자 비판여론에 밀리다 못해 자존심 하나 지키자고 사과조차 거부한 셈.
이후 총여학생회의 주요 인물들은 서정범 교수의 무혐의 처분이 나고 반성 여론이 빗발치자 연락을 끊고 잠수했고 07년도 법대, 문대 오리엔테이션에 드나들며 '우리들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성폭력은 더욱 나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다녔다. OT에 참석한 신입생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심지어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에게 자신들은 정당한 행위를 했다는 주장을 하고 다녔다.
서정범 교수는 끝내 교단에 복귀하지 않았으며 2009년 7월 14일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타계 당시 대자보로 이 사건에 대해 당시 학생회 멤버들의 사과와 퇴진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다만, 당시 학생회 선거운동 기간이었던 탓에 학생회를 욕하는 입장에서 보아도 반대 측의 언론플레이로 보였을 뿐이라고 카더라. 결국 서정범 교수의 제자의 요구로 내려졌다. 당시 학생회 소속 인물이 장례식에 와서 사과했으며 그게 진심으로 보여서 용서했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하나 결국 공개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2010년, 사건 당시 총여학생회장이었던 조이미진은 민주노동당 동대문구위원회 중앙대의원으로 활동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명확한 근거는 없으나 조이미진이 정의당 서울시당 소속 김하철 의원과 결혼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검색된다. 당시 부총여학생회장 강임다은은 정치 활동을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사건 이후 총여학생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으며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총여학생회에 대한 여러 의견이 교차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론이 비등하는 것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2021년 총여학생회는 투표로 해산이 결정되었다. 심지어 여학생만 투표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걸 보면 여학생들조차 여학생회의 존재와 어그로, 삽질에 지친 거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행동들로 인한 반감으로 오히려 페미니스트가 교내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소수의 위치로 떨어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